레바논 내전 속 태어난 헤즈볼라 뜻 및 이스라엘의 진짜 모습

최근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속에서 헤즈볼라 수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중동에 폭풍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레바논 내전 속에서 태어난 헤즈볼라 뜻과 헤즈볼라 군사력 및 테러집단이 된 이유를 알아보고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비롯한 이스라엘 헤즈볼라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레바논 내전 배경

1. 내부 종파적 갈등

레바논 내부는 당시 다종교 사회로, 기독교 마론파,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드루즈파 등이 다양한 종교들의 종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다양성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하였으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대거 레바논으로 유입되며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레바논 남부와 난민 캠프를 중심으로 활동을 확대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레바논 내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군사적 갈등 사이에 레바논이 지리적으로 끼게 되면서 레바논 내부 기독교 마론파와 무슬림 간 정치적 균형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1982년,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ce Forces)은 레바논을 침공합니다. 처음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목적은 표면상으로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내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일종의 임시정부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뿌리를 뽑고, 레바논 내에 친 이스라엘-친서방 성향의 마론파 그리스도교 극우 민병대이자 정당인 팔랑헤당(카타이브당이라고도 함) 정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레바논 내전 이스라엘의 등장 모습이며 레바논 내전 원인으로 이스라엘이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베이루트 침공 당시 사진
이스라엘 베이루트 침공 당시 사진

이스라엘은 사실 그전부터 기회를 틈틈이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영국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사건은 PLO와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PLO와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아부 니달”이 이라크에서 이끄는 파벌이 벌인 일이었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빌미로 삼아 레바논을 침공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3. 베이루트 침공 작전 시행

1982년 6월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 방위군은 기세를 타고 베이루트로 향했고, 세 방향으로 나누어 베이루트를 포위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일명 ‘베이루트 포위 작전(Siege of Beirut)’으로 알려진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은 군사력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바탕으로 해상과 공중, 육지를 모두 포위시키고 식량과 물의 보급도 차단해버립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베이루트에 무차별 폭격을 퍼붓기 시작하며 엄청난 대학살극이 벌어졌는데 불과 두 달 사이에 한 도시에 집중적으로 벌어진 이 학살극의 정확한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서도 수천 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메나헴 베긴 수상은 엘리 게바 대령과 45분 동안 같이 있었고, 그 후 엘리 게바 대령은 지위를 박탈당했다. 엘리 게바 대령은 수상 말했던 것을 상기했다. “저는 여단장입니다. 저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베긴 수상은 대령의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그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는가?” 엘리 게바 대령이 그러한 명령이 없었다고 말하자 베긴 수상은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건가?”

– <뉴욕타임스> 1982년 7월 29일 기사 중 –

위에 언급된 기사는 ‘베이루트 포위 작전’에서 이스라엘군 여단장을 맡았던 엘리 게바 대령이 상부의 작전 수행 명령을 거부했던 에피소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당시 ‘베이루트 포위 작전’의 총책임자는 훗날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는 아리엘 샤론 당시 국방장관과, 본 기사 발췌문에서 언급된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입니다. 이때 엘리 게바 당시 대령은 ‘욤키푸르 전쟁’에도 참전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물리적, 법적 손실을 무릅쓰고 이 작전 수행을 거부한 것은 기사에서 나와 있듯 당시 베이루트에는 아이들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있었고 그곳에서 군사작전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군인으로서 항명할 수밖에 없는 반인륜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베이루트 포위 작전은 이스라엘의 비윤리적 군사작전이었으며 질긴 레바논 내전 원인이자 시작을 알리는 작전이 됩니다.

레바논 내전 전개 과정

1. 사브라 샤틸라 학살사건 발생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대학살극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같은 해 9월, 베이루트 남부에서 또 다른 학살극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와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 커뮤니티가 밀집해 있는 사브라 구역과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벌어졌는데 불과 이틀 만에 아동과 노인, 여성들을 포함하여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들이 학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사브라 샤틸라 학살 당시 사진
사브라 샤틸라 학살 당시 아이를 잃은 어머님의 비통한 모습

이때 젊은 남성들의 경우, 일부는 시체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거나, 심지어 가죽이 벗겨지거나 거세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 베이루트 학살의 범인은 팔랑헤 민병대(친 이스라엘-친서방 성향의 마론파 그리스도교 극우 민병대)들이었지만, 이것은 표면적이고 당시 베이루트를 장악하고 팔랑헤 민병대원들을 지원하고 감독한 것은 아리엘 샤론(전 이스라엘 총리)과 이스라엘 방위군이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레바논 내전 이스라엘 개입이 기정사실입니다.

2. 이스라엘의 책임 전가

UN 총회는 이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을 규탄하고, 이를 대학살(Genocide)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이 총회에서 이스라엘 편이었던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들 역시 이 결정에 기권하거나 표를 행사하지 못했는데 그만큼 이 대학살극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다를 바 없음을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은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학살과 전쟁범죄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자신들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마론파 레바논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사람은 죽였으나, 내가 죽인 것은 아니라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논리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대며 레바논 전역이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인해 종파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되는 와중에 무장 저항을 외치며 레바논인들의 가슴을 파고든 조직이 있었으니, 그것이 그 유명한 헤즈볼라입니다.

3. 헤즈볼라 뜻 및 기원

헤즈볼라 뜻은 아랍어로 “하즈브 알라”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이를 직역하면 “하나님의 당(Party of God)”이라는 뜻입니다. 이 명칭은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에서 ”하나님의 당(헤즈볼라)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를 상징하며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 및 정치 조직을 의미합니다.

헤즈볼라 군대
레바논 내부에서 헤즈볼라의 영향력은 이미 확고해져있다.

헤즈볼라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다만 보통 내전 시기 (상당수는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던) 여러 갈래의 시아파 무장 저항 단체들을 그 뿌리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한 이란의 지원을 받은 헤즈볼라 군사력은 이스라엘 군사력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곧 레바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아파 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친 이스라엘 계열의 남레바논군 정부군을 대상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철수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4. 끊이지 않는 레바논 내전

두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헤즈볼라가 벌인 재건 사업이나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내쫓아낸 사건들은 레바논 내에서 종파를 막론한 헤즈볼라의 지지율 상승의 요인이 되며 레바논 내부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제 같은 시아파 내부에 분열이 시작됩니다. 기존의 시아파 정치 조직은 시리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헤즈볼라는 이슬람의 가치를 강조하며 무장 투쟁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군을 레바논에서 몰아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고, 현재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세력과의 갈등뿐 아니라 같은 이슬람 시아파 내부 분열까지 이루어지며 끊이지 않는 내전의 고리에 빠져 있습니다.

헤즈볼라는 테러 조직인가?

1. 헤즈볼라를 이해하기 복잡한 이유

레바논 헤즈볼라는 비단 레바논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역의 현대사를 돌아보더라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조직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이면서 그중에서도 소수인 시아파 무슬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
  2. 준군사 조직이자 현대 문명 국가에서 승인을 얻은 정당 중 하나라는 점
  3. 게릴라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하여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4. 이슬람의 종교적 윤리에 입각한 사회복지 활동을 벌여왔다는 점
  5. 다른 이슬람주의 단체 및 정당과는 달리 이슬람 신정 국가 건설을 포기했다는 점
  6. 반미 뿐 아니라 반러, 반중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과 달리 러시아, 중국과도 관계가 형성되어있다는 점

이러한 헤즈볼라 차별점은 특정 한쪽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2. 편향적인 판단이 불러온 오해

대부분의 국가 특히 미국과 친미성향을 지닌 국가들은 당연히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중동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라는 대국이 하는 말을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지향성 측면에서 협력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즈볼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견제 목적과 헤즈볼라가 러시아와 암묵적으로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들이 서방 국가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큰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테러집단이라는 편향적인 측면만 전 세계에 부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3. 테러의 이면, 절박한 선택 가능성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헤즈볼라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더는 후퇴할 곳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테러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폭력과 극단주의로 헤즈볼라라는 단체를 치부하기보다는, 그 배경과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고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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